일타스님─밝은 삶을 여는 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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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상사 댓글 0건 조회 2,821회 작성일 14-06-04 15:05본문
밝은 삶을 여는 계율
일타스님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여
율은 부처님의 행이니라
어둠과 밝음의 세계
공덕녀와 흑암녀가
언제나 함께 하듯이
몸이 있으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
어찌 편안함만을 얻으려 할 것인가]
공덕녀와 흑암녀
불교의 여러 경전 속에서 공덕녀와 흑암녀 자매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공덕녀와 흑암녀는 지극히 대조적인 인물로서, 그들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살이의 상대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느날, 한 부호장자의 집에 인물이 지극히 아름답고 품위가 넘치는
여인이 찾아왔다. 눈앞이 맑아지는 듯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장자는
지극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이오?"
"공덕녀라 하옵니다."
"무엇을 하는 여인이오?"
"소녀 같은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하오리까? 다만 저를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더이다. 또 저를 보고 나면 금은보화가 모여들고
무병장수하며, 재수대통하게 되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미모에 재물과 건강과 행복까지 안겨주는 사람이라니!
장자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함께 살 것을 청하였고,
이에 대해 공덕녀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저에게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동생이 있습니다.
만약 제 동생도 함께 데리고 살겠다면 기꺼이 응하겠나이다."
"낭자의 동생이라면, 앞을 못보는 장님이라고 한들 내 어찌 마다하리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 어찌된 노릇인가? 그녀는 언니를 닮은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 거무티티한 피부, 줄줄줄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쳐다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나올 듯한 추녀 중의 추녀였다.
"제 동생, 흑암녀이옵니다."
장자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그대는 어떤 여자인가?"
"나에게는 묘한 재주가 있지요. 나를 보는 사람은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부유한 사람은 가난해지며, 재수 있던 사람은 재수가 없어집니다."
장자는 기겁을 하여 집 밖으로 내쫓으려 하였으나, 흑암녀는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안돼요! 나는 절대로 우리 언니와 떨어질 수 없어요.
내가 가면 우리 언니도 함께 가야 해요."
결국 장자는 공덕녀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 어둠에서 밝음의 세계로 ─
이 이야기는 무엇을 깨우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인생살이 속에 지극히 아름답고 복덕이 한량없는 공덕녀와 역겹도록 추하 고 불행을 안겨주는 흑암녀가 공존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마치 손등과 손바닥이 함께 하듯이, 행복과 불행, 좋은 것과 나쁜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인 것이다.
실로 우리의 삶에는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 속에서 행복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하고,
행복 속에 잠겨 있을 때에도 불행을 감지하며 새로운 행복의 길을 닦을 줄 알아야 한다.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밝음과 어두움...
모든 상대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는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의 행복에 도취되어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서도 안되고,
불행을 비관하여 함부로 포기하거나 제멋대로 살아서도 안된다.
오히려 지금의 행복과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여 새로운 밝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불자 생활의 기본 자세요 인생살이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며 밝음의 세계, 행복만이 가득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삼학을 잘 배워 익히고 닦아야 한다.
곧 삼학은 불자 생활의 기본 자세로서 나쁜 일을 모두 끊어버리고 좋은 일을 닦는 계,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켜 삼매를 이루는 정, 몸과 마을의 안과 밖을 올바로 관찰하는 혜의 세 가지 기본 수행법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잘 닦으며 어둠을 벗어나 밝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고, 행복이 가득한 해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타스님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여
율은 부처님의 행이니라
어둠과 밝음의 세계
공덕녀와 흑암녀가
언제나 함께 하듯이
몸이 있으면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
어찌 편안함만을 얻으려 할 것인가]
공덕녀와 흑암녀
불교의 여러 경전 속에서 공덕녀와 흑암녀 자매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공덕녀와 흑암녀는 지극히 대조적인 인물로서, 그들 자매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살이의 상대적인 모습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느날, 한 부호장자의 집에 인물이 지극히 아름답고 품위가 넘치는
여인이 찾아왔다. 눈앞이 맑아지는 듯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장자는
지극히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 이름은 무엇이오?"
"공덕녀라 하옵니다."
"무엇을 하는 여인이오?"
"소녀 같은 사람이 무엇을 제대로 하오리까? 다만 저를 만나는 사람은 모두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더이다. 또 저를 보고 나면 금은보화가 모여들고
무병장수하며, 재수대통하게 되옵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미모에 재물과 건강과 행복까지 안겨주는 사람이라니!
장자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함께 살 것을 청하였고,
이에 대해 공덕녀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였다.
"저에게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동생이 있습니다.
만약 제 동생도 함께 데리고 살겠다면 기꺼이 응하겠나이다."
"낭자의 동생이라면, 앞을 못보는 장님이라고 한들 내 어찌 마다하리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여인이 대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이 어찌된 노릇인가? 그녀는 언니를 닮은 곳이라고는 한군데도 없었다.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 거무티티한 피부, 줄줄줄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쳐다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이 나올 듯한 추녀 중의 추녀였다.
"제 동생, 흑암녀이옵니다."
장자는 속이 뒤틀리는 것을 참으며 물었다.
"그대는 어떤 여자인가?"
"나에게는 묘한 재주가 있지요. 나를 보는 사람은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부유한 사람은 가난해지며, 재수 있던 사람은 재수가 없어집니다."
장자는 기겁을 하여 집 밖으로 내쫓으려 하였으나, 흑암녀는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안돼요! 나는 절대로 우리 언니와 떨어질 수 없어요.
내가 가면 우리 언니도 함께 가야 해요."
결국 장자는 공덕녀마저 포기하고 말았다.
─ 어둠에서 밝음의 세계로 ─
이 이야기는 무엇을 깨우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인생살이 속에 지극히 아름답고 복덕이 한량없는 공덕녀와 역겹도록 추하 고 불행을 안겨주는 흑암녀가 공존하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마치 손등과 손바닥이 함께 하듯이, 행복과 불행, 좋은 것과 나쁜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은 언제나 붙어 다니기 마련인 것이다.
실로 우리의 삶에는 영원한 행복도 영원한 불행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 속에서 행복의 길을 찾을 줄 알아야 하고,
행복 속에 잠겨 있을 때에도 불행을 감지하며 새로운 행복의 길을 닦을 줄 알아야 한다. 행복과 불행, 사랑과 미움, 밝음과 어두움...
모든 상대적인 것이 공존하고 있는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이 중요하다.
우리는 바로 이 순간의 행복에 도취되어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서도 안되고,
불행을 비관하여 함부로 포기하거나 제멋대로 살아서도 안된다.
오히려 지금의 행복과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여 새로운 밝음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밝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불자 생활의 기본 자세요 인생살이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며 밝음의 세계, 행복만이 가득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처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삼학을 잘 배워 익히고 닦아야 한다.
곧 삼학은 불자 생활의 기본 자세로서 나쁜 일을 모두 끊어버리고 좋은 일을 닦는 계,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켜 삼매를 이루는 정, 몸과 마을의 안과 밖을 올바로 관찰하는 혜의 세 가지 기본 수행법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잘 닦으며 어둠을 벗어나 밝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고, 행복이 가득한 해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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